뉴스 바로가기

기사 상세

경제

`한국형 플라잉기스` 아세안에 전파…시장개척·구조조정 기회로

임성현 기자
입력 : 
2019-12-01 18:12:24
수정 : 
2022-03-21 17:42:18

글자크기 설정

수출한파서 제조업 살릴 비법 / 주형환 前 산업부 장관

수출경쟁력 약해진 조선·철강
동남아·남미·중동으로 옮기고
국민연금·KIC 펀드 등 조성해
중기 동반진출·현지기업 육성

AI·5G·빅데이터 등 신사업도
인프라 잘 구축된 선진국보다
규제 적은 개도국 먼저 공략을
◆ 매경 명예기자 리포트 ◆

사진설명
최근 현대중공업은 아람코와 손잡고 사우디아라비아에 합작 조선소를 짓기로 했다. 사우디 동부 주바일항 인근 라스알헤어 지역에 약 495만㎡ 규모로 들어서는 합작 조선소는 약 5조원이 투입돼 2021년까지 일반상선과 해양플랜트 건조는 물론 선박 수리까지 가능한 조선소로 건설될 예정이다.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사우디 국왕의 이름을 따 '킹 살만 조선산업단지'로 명명됐을 정도로 사우디의 역점 사업이다. 글로벌 경쟁 심화로 예전의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는 국내 제조업으로선 구조조정을 촉진하는 것과 동시에 산업의 라이프사이클도 연장할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다. 특히 지금의 제조업은 현재 경쟁력과 미래 잠재력을 모두 잃어가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딜로이트가 발표하는 '글로벌 제조업 경쟁력지수'에서 한국은 2010년 중국, 인도에 이어 3위였지만 2013년 5위로 떨어진 뒤 내년에는 6위로 내려앉을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말부터 1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는 수출 마이너스는 미·중 무역분쟁이나 글로벌 경기 침체와 같은 대외적인 요인이 크지만 국내 기업들의 수출경쟁력 저하와도 직결돼 있다. 정부가 조선, 자동차 등 업종별 활성화 대책은 물론 전방위 제조업 지원 대책을 내놓은 것도 그 때문이다.

과거 미국, 독일, 일본과 같은 산업화 선진국의 기술을 학습하며 한국을 비롯한 대만, 싱가포르, 홍콩 등 '아시아 4마리 용'들이 발전하고 뒤이어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으로 확산되면서 동남아시아 경제 전체가 발전한다는 모델이 '플라잉 기스'이다. 이제 한국은 과거 일본처럼 '우두머리 거위(head geese)' 역할로 전환하는 데 속도를 내야 한다. 뒤따르는 동남아, 중남미 등에 제조업을 수출하며 개도국 시장 개척과 국내 제조업 체질 개선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길이다.

우선 조선, 철강 등 강점을 가지고 있지만 점차 경쟁력이 약해지고 있는 전통 제조업 분야의 산업협력을 통해 해당 산업의 해외 이전을 촉진해야 한다. 국내 납품기업들도 동반 진출하면서 현지 공급망 형성에 힘을 보태고 현지 로컬기업들의 참여도 유도할 필요가 있다. 기존 산업의 라이프사이클을 연장할 뿐만 아니라 한국 중심의 글로벌 밸류체인 구축에도 기여할 수 있다.

인공지능, 5G, 빅데이터 등을 통한 4차 산업혁명으로 새롭게 등장할 산업에까지 이 같은 사업 모델이 확대될 필요가 있다. 현대차가 동남아판 우버인 그랩에 2억7500만달러를 투자하고 중동판 우버인 카림에 차량 5000대를 공급하기로 한 것이 좋은 본보기다. 신산업은 관련 인프라가 잘 구축된 선진국에서 시작하는 것이 유리할 것 같지만 오히려 발상의 전환을 통해 신흥 개도국을 먼저 공략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개도국 시장은 높은 성장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물론 신산업을 둘러싼 이해관계자와 규제가 적어 사업 추진의 걸림돌이 적기 때문이다.

현지에 공장을 짓는 그린필드 투자 일변도에서 벗어나 현지 기업과 인수·합병이나 합작 방식을 추진하는 것은 효율성 측면에서 최적의 선택지다.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 중견기업들도 해외 진출에 속도를 내야 한다. 한국투자공사(KIC)와 국민연금이 지원군이다. 주요 협력국가별로 현지 진출 펀드를 조성해 중소, 중견기업 해외 진출의 마중물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국가별 전문 펀드를 통해 협력 가능 분야의 현지 기업환경 조사, 파트너 물색, 초기 투자와 정착 등을 지원해 준다면 중소, 중견기업들이 다른 국가 기업들과 산업협력을 맺는 데 촉매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개도국과의 과감한 산업협력을 통한 제조업 부활과 수출시장 개척으로 또 한 번의 대도약에 나서야 한다. 경제사를 보면 시장을 확대하고 그 과정에서 필요한 구조조정에 성공했던 나라는 번영하고, 그렇지 못한 나라는 성공하지 못했다.

우리 경제가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대열에 합류한 데는 두 가지 현명한 선택이 약 30년 간격을 두고 이루어진 덕분이다. 1960년대 초반 대부분 국가들이 수입 대체 공업화에 집중할 때 우리나라는 발 빠르게 수출 주도 공업화 전략을 선택했고 그 결과 지금까지 두 세대에 걸쳐 번영할 수 있었다. 1990년대 초반에는 정보통신기술 혁명 대열에 조기 참여함으로써 지난 약 30년간 글로벌 ICT 리더로 또 다른 번영을 누릴 수 있었다. 현재 4차 산업혁명이라는 또 다른 물결에 올라타 앞으로 30년간 번영을 누릴 수 있는지 결정되는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다시 서 있는 것이다.

■ <용어 설명> ▷ 플라잉 기스(flying geese) : 추격자 전략을 뜻하는 것으로 안행모델로도 불린다. '우두머리 거위(head geese)'로 불리는 미국, 독일과 같은 산업화 선진국의 기술을 학습하며 한국을 비롯한 대만, 싱가포르, 홍콩 등 개발도상국들이 경제발전을 이루고 뒤이어 기술이전을 통해 아시아 경제 전체가 발전한다는 모델이다.

[정리 = 임성현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 기사가 마음에 들었다면, 좋아요를 눌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