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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림 품은 술탄왕국…"관광천국 만들겠다"

임영신 기자
입력 : 
2019-03-07 17:47:31
수정 : 
2019-03-08 14: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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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메카` 선언 브루나이 르포

자원고갈 대비 脫석유 선언
여의도 183배 청정 자연림
템부롱 `에코타운` 개발 검토
전자결제 등 디지털화도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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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국제공항에서 비행기로 5시간30여 분 날아 도착한 동남아시아 보르네오섬 서북부에 있는 브루나이. 경기도의 절반 크기인 브루나이 수도 반다르스리브가완 시내 인근 선착장에서 보트로 달린 지 5분 남짓. 도시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성인 키를 훌쩍 넘는 맹그로브 나무들이 양옆으로 빽빽하게 도열한 '숲 장벽'이 끝없이 펼쳐졌다. 40여 분 뒤 템부롱 지역에서 차를 갈아타고 다시 20여 분 달리자 '울루 템부롱 국립공원'에 닿았다. 울창한 열대우림과 야생동물, 미세먼지 한 점 없는 하늘, 햇살에 반짝이는 강물 등이 한데 어우러진 정글은 인류 문명과 담을 쌓은 듯 고요했다. 규모는 여의도의 183배(549㎢)에 달한다. 브루나이 정부 관계자는 "원시 자연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는 점이 최대 매력"이라며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에코 투어리즘(생태 관광) 등 상품 개발이 활발하다"고 말했다. 지난 1월 30일 찾은 '21세기 술탄(이슬람 최고 지도자)'의 국가이자 동남아 자원 부국(富國)인 브루나이는 탈(脫)석유를 선언하고 관광 개발 실험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었다. 왕실 1인 통치 체제인 이 나라는 석유에 오랫동안 의존하다 뒤늦게 경제 체질을 바꾸기 위해 동남아 관광 시장에 도전장을 낸 '후발 주자'다. 동남아에서 가장 엄격한 이슬람 율법을 적용하고 있다. 천혜의 자연과 이슬람 문화를 지키면서 관광산업 붐을 일으키기 위한 묘안 찾기에 나서 주목된다.

브루나이는 1929년 유전이 깜짝 발견되면서 석유 개발을 통해 막대한 돈을 벌어들였다. 석유와 천연가스는 브루나이 수출의 90%, 국내총생산(GDP)의 60~70%를 차지하고 있다. 고유가 시대엔 1인당 GDP가 4만7000달러를 기록하는 등 아세안에서 싱가포르에 이어 둘째로 높았다.

그러나 '알라의 선물'인 석유가 향후 20년 내 고갈된다는 전망이 나왔고, 배럴당 100달러를 웃돌던 유가는 지난해 말 한때 50달러 선이 무너지는 등 내리막길을 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다른 동남아 국가들이 2012~2016년 연평균 5% 이상 성장할 때 석유 의존도가 높은 브루나이는 -1.3%의 역주행을 했다"고 진단했다. 이에 브루나이 왕실은 경제 개혁에 착수했다. 핵심 중 하나가 관광산업 육성이다. 브루나이 정부가 주목하는 지역은 본토에서 동쪽으로 떨어져 있는 템부롱이다. 브루나이는 총 4개 지역으로 구성돼 있다. 템부롱은 브루나이에서 둘째로 큰 지역이지만 바다로 가로막혀 물류나 인구 이동이 쉽지 않았던 탓에 국립공원을 빼면 이렇다 할 개발이 거의 없었다. 관광시설을 꼽자면 국립공원에 있는 4~5곳의 '통나무 에코 빌리지'와 숲 전경을 즐길 수 있는 '캐노피 워크' 정도다. 다른 제약도 있다. 환경보호단체인 세계자연기금(WWF)이 2007년 보르네오섬의 산림 22만㎢를 보호하자는 내용의 '하트 오브 보르네오(Heart of Borneo)' 프로그램을 발표하면서 템부롱 등 브루나이 영토의 약 60%가 여기에 포함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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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최근에 나온 아이디어는 템부롱을 '차세대 에코 타운'으로 개발하는 것이다. 브루나이 정부와 아세안 싱크탱크인 아세안·동아시아경제연구소(ERIA)는 지난해 말 보고서를 내고 템부롱을 대학과 연구개발(R&D)센터 등 연구기관이 집결해 창의성을 발휘하는 '살아 있는 실험실', 신재생 에너지로 유지되는 '탄소 제로 도시', 첨단 기술을 활용해 자연을 이해하는 '러닝 투어리즘' 현장 등으로 탈바꿈시키자고 제안했다. 무함마드 다우드 말레이시아 관광예술문화부 국장은 한·아세안센터가 현지에서 브루나이 자원관광부와 공동으로 개최한 '한·아세안 관광 역량 강화 워크숍'에서 "말레이시아 핫플레이스인 '페낭 힐'이나 '조호바루 레고랜드' 등은 기업과 손잡고 개발에 성공한 사례"라며 "에코 투어리즘도 수익이 창출돼야 지속 가능하다는 점에서 민간 투자자에게 규제 완화 등 어떤 인센티브를 줄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바다에선 본토와 템부롱을 잇는 총연장 30㎞ 교량 건설이 진행 중이다. 대림산업이 핵심 구간을 짓고 있다. 이르면 올해 11월 개통될 예정이다. 브루나이 정부 관계자는 "차로 2시간 넘게 걸리던 거리가 40분 안팎으로 단축된다"며 "접근성이 좋아지는 만큼 외국인 관광객이 늘고 다양한 행사를 기획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관광산업에 필요한 디지털 인프라 구축도 서두르고 있다. 브루나이는 스마트폰 보급률이 높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플랫폼 이용자는 많지만 전자 결제 서비스는 걸음마 단계다. 브루나이 쇼핑몰, 슈퍼마켓, 편의점 등 대다수의 상점에서 카드 단말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현금만 취급한다. 시내 주요 상점 대여섯 곳을 돌았지만 카드 결제가 되는 곳은 단 1곳뿐이었고, 20브루나이달러(약 1만6000원) 이상 지불해야 가능했다. 현지 매체 보르네오 블리턴은 "브루나이 주요 통신업체 프로그레시프와 시중은행 BIBD 등이 지난해 전자 결제 서비스를 처음 선보였다"며 "모바일 결제에 익숙한 외국인 관광객들을 위해 알리페이와 위챗페이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고 최근 보도했다.

브루나이 정부 관계자는 "내수시장이 작다 보니 수익성 문제로 디지털 인프라 투자가 더딘 편"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브루나이 관광산업이 발전하려면 정보기술(IT)과 결합시켜야 한다고 조언한다. 전계성 홍콩 폴리텍대 호텔관광경영학 교수는 "디지털화(Digitalization)가 관광산업에서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다"며 "스마트 기술이 스마트 시티로 구현되듯 관광도 '스마트 투어리즘'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관광에 디지털 기술을 입히면 브루나이는 주변 국가들이 밟아 온 여러 단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게 전계성 교수의 설명이다. 이런 면에서 정보통신기술(ICT)에 강점이 있는 한국이 브루나이와 협력할 여지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혁 한·아세안센터 사무총장은 "소프트웨어 측면에서 보자면 한국의 관광 상품·서비스 개발 경험을 브루나이와 공유하는 것도 바람직한 민간 협력 모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다르스리브가완 = 임영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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