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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中 무역전쟁에 어부지리…베트남 산단 `즐거운 비명`

임영신 기자
입력 : 
2019-09-13 18:27:57
수정 : 
2019-09-13 18:5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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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제조업 메카 `박닌성 산업단지` 르포

반값 인건비에 규제 적고
교통인프라까지 뛰어나
가까운 중국서 대거 몰려

공장용지 답사서 계약까지
일주일만에 일사천리 완료

中, 올 상반기 한·일 제치고
베트남 최대 투자국 떠올라
사진설명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서 북쪽으로 고속도로를 1시간가량 달려 박닌성(省)에 들어서면 깔끔하게 정리된 공단을 만나게 된다. 베트남과 싱가포르 국영기업이 만든 합작회사 '베트남-싱가포르 산업공단(VSIP)'이 운영 중인 박닌성 제1산업단지다. 최근 방문한 이곳에선 700㏊ 용지에 2~4차선 도로를 따라 기업 로고를 단 공장들이 줄지어 있었다. 드림텍, 비엘, 니토 등 한·중·일 전기·전자부품 업체 등 119개 기업이 공장을 가동 중이다. 까오판뚜안 VSIP 마케팅 매니저는 "미국의 '관세 폭탄'을 피하려는 중국 기업과 중국에서 공장을 운영하는 해외 기업들로부터 입주 문의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며 "대기자 명단까지 만들었다"고 말했다. 미·중 무역전쟁이 확전 일로를 걸으면서 탈(脫)중국 기업들의 베트남 행렬이 가속화하고 있다. 중국 인건비 상승과 환경 규제 강화 등으로 '차이나 엑소더스(탈출)'가 2017년 말부터 본격 시작됐지만 미·중 무역전쟁이 장기전에 돌입하자 기업들이 앞다퉈 '포스트 차이나'의 대표 국가인 베트남에서 새 활로를 찾고 있다.

박닌성은 베트남 5개 특별시(하노이·호찌민·하이퐁·다낭·껀터)와 58개 성(省) 가운데 가장 면적이 작고 낙후된 지역이었지만 삼성전자, 삼성디스플레이, 삼성SDI 등 삼성 계열사의 대규모 투자에 힘입어 제조업 메카로 급부상했다. 최근엔 미·중 무역분쟁의 수혜지역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중국과 가깝고 교통 인프라가 잘 구축돼 있어서다. 박닌성에서 철도나 도로를 2~3시간 달리면 중국에 닿는다. 북부지역 최대 하늘길인 노이바이 국제공항까지 자동차로 35분(약 40㎞), 바닷길인 하이퐁 국제항까지 90분(약 120㎞) 걸린다. 하이퐁 국제항은 준설공사 덕분에 지난 5월부터 미국에 직항하는 대형 컨테이너선이 들어올 수 있게 됐다. 그전까지는 하이퐁에서 미국에 수출하려면 소형 선박에 싣고 싱가포르나 홍콩에 들러 대형선에 옮겨야 했지만 미국 직항로가 열리면서 항해 시간이 일주일가량 단축됐다.

공장을 가장 빨리 세울 수 있는 산업단지에 해외 기업들의 문의가 쏟아지고 있다. 까오판뚜안 매니저는 "산업용 토지와 임대공장은 동났다"고 귀띔했다. 북동부 꽝닌성에 위치한 동마이 산업단지에도 작년만 해도 중국 기업이 없었지만 올 들어 5개사가 이전을 추진하고 있다. 현지 매체에 따르면 세계 최대 전자제품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기업인 폭스콘이 동마이 산업단지에 TV 생산공장을 설립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 중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베트남 산업단지마다 외국기업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며 "몇몇 중국 기업들은 공장용지 답사 후 계약까지 일주일 만에 해치운다"고 전했다.

이런 분위기는 통계에 고스란히 나타난다. 대만 폭스콘을 비롯해 중국 화학섬유 업체 하이리더, 전자기기 업체 허얼타이 등이 베트남 이전을 결정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지난달 "작년 여름 이후 중국 중견 제조업체 33개사 중 70%인 24개사가 베트남에 공장을 세우겠다고 발표했다"고 보도했다.

베트남 기획투자부에 따르면 올 상반기 외국인직접투자액은 중국이 18억760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배 급증했다. 그 결과 중국은 한국과 일본, 싱가포르를 제치고 베트남 최대 투자국으로 떠올랐다. 1~2년 전만 해도 중국은 베트남 전체 외국인 투자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6%에 불과했지만 올해 18.1%로 폭증했다.

뜻밖의 '무역전쟁 특수' 덕분에 산업단지 개발도 활기를 띠고 있다. VSIP는 현재 베트남 6개 도시에서 총 9곳의 산업단지를 운영하고 있지만 박닌성 제1산업단지에서 20㎞ 떨어진 곳에 제2산업단지(273㏊)를 조성하고 있다.

응우옌후옹기앙 VSIP 마케팅 부장은 "박닌성 마지막 산업단지용 용지여서 희소가치가 크다"며 "내년 가을 분양하기 위해 공사를 서두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제1산업단지 국가별 외국기업 입주 현황에 따르면 일본이 22%로 가장 많고 이어 한국(16%) 아세안(12%) 대만(10%) 유럽(5%) 순이며 중국은 3%에 불과하다. 하지만 제2산업단지는 이 순위가 바뀔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글로벌 부동산 컨설팅 회사인 CBRE는 "베트남 산업단지에 대한 기업들의 수요가 늘면서 박닌, 하이즈엉, 하이퐁 등 산업단지 토지 임대료가 5~8%가량 올랐다"고 분석했다.

베트남이 계속 웃을 수 있을지 두고 봐야 한다. 미국 무역적자 해소에 사활을 건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베트남을 압박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작년 상반기 미국의 베트남에 대한 무역적자는 182억달러였지만 올해 같은 기간 253억달러로 39% 증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원산지를 속이고 베트남을 거쳐 '우회수출'을 시도하는 중국 기업들을 베트남 당국이 철저히 단속하지 않으면 베트남에 관세 부과 등 제재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하노이·박닌(베트남) = 임영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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