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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리스크에 원유의존 높아"…신흥국 자금이탈 촉발하나

지면 A8
노르웨이 국부펀드 신흥국 투자 축소 안팎

멕시코·말레이·러시아 등
위기 발생하면 순식간에 전염
10개국 채권투자 동시 중단
한국채권 매각대상 3조원 수준

일본·덴마크·스위스는 유지
선진국 중심 투자대상 개편
사진설명
운용 자산이 1조달러(약 1100조원)에 이르는 노르웨이 국부펀드가 신흥국 채권을 투자 대상에서 배제하면서 글로벌 시장에 미칠 영향이 주목된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기조가 멈춘 후 인기몰이를 하던 신흥국 채권에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이 발행한 채권이 노르웨이 국부펀드 투자 대상에서 제외돼 한국 시장에도 영향이 미칠 전망이다. 이와 관련해 외국계 증권사의 한 채권담당 임원은 "포트폴리오에서 제외되더라도 5% 이내는 보유 가능하기 때문에 실제 매각 대상에 오를 한국 채권은 원화와 달러화를 합쳐 3조원 수준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노르웨이 국부펀드가 신흥국 발행 채권 보유를 줄이기로 한 배경에는 신흥국 통화 위험이 커지고 이들 국가가 발행한 채권 간 상관관계가 강해진 데 따른 것이다. 주식 보유 비중을 높이고 있는 노르웨이 국부펀드로서는 다양한 통화에 대한 위험 노출을 감수하면서까지 전 세계 국채를 갖고 있을 의미가 없어진 셈이다.

노르웨이 국부펀드가 신재생에너지 투자를 늘리고 전통적인 원유 관련 투자를 줄이기로 한 것도 이유로 지목된다. 신흥국 산업에서 차지하는 원유 비중이 높아 재생에너지가 확산되면 이들 국가에 대한 투자를 줄이는 것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노르웨이 국부펀드의 새 방침이 공개된 지난 5일(현지시간) 시브 옌센 노르웨이 재무부 장관은 "신흥시장 채권을 보유하는 데 상당한 거래 비용이 수반된다"고 포트폴리오를 조정한 이유를 밝혔다. 그는 이어 "국부펀드에 일본, 덴마크, 스위스, 캐나다, 호주, 싱가포르, 뉴질랜드, 홍콩 등 선진국 채권은 그대로 둘 것을 권고한다"고 밝혔다.

세계 최대 규모 연기금의 이 같은 움직임은 훈풍이 불던 신흥국 채권시장에 찬물을 끼얹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최근 신흥국 국채는 연준의 금리 인상 중단을 계기로 신흥국 자금 유출 우려가 누그러지면서 자금이 몰리는 추세였다. 특히 한국이 포함된 것을 놓고 국내 투자자들 관심이 커지고 있다. 노르웨이 국부펀드가 갖고 있는 외화 발행 채권 포트폴리오 중 원화 발행 채권 비중은 1.7%로 신흥국 중 비중이 가장 높다. 이 때문에 노르웨이 국부펀드의 채권 투자 축소는 시장 불안을 더욱 키우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노르웨이 국부펀드는 한국 국채뿐 아니라 국민은행과 기아자동차 등 국내 민간기업 채권도 보유하고 있다. 문홍철 DB금융투자 연구원은 "노르웨이 국부펀드가 주요 통화를 제외한 나머지 비중을 낮춘다고 이미 언급한 만큼 새로운 사실은 아니다"면서도 "운용 규모 자체가 너무 크고, 가뜩이나 국내 채권 가격이 빠르게 오르기만 한 만큼 채권시장에 수급 측면에서 악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번 결정은 2017년 발표의 연장선상이다. 당시 노르웨이 국부펀드는 신흥국 통화 표시 채권 비중을 조절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울리히 렉트만 코메르츠방크 외환 전략 헤드도 블룸버그와 인터뷰하면서 "이번 결정은 포트폴리오 운용 전략 측면에서 이뤄진 것"이라며 "신흥국 시장 전체에 대한 비관론으로 해석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지나친 위기론을 경계하는 것이다. 또 국부펀드 비중을 조정하기 위해서는 의회 동의가 필요하다. 즉 시장에서는 노르웨이 국부펀드가 채권 비중을 본격 축소하기 전 대비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다.

일각에서는 이번 노르웨이 국부펀드 움직임을 두고 신재생에너지를 강화하고 있는 노르웨이 정부를 따르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같은 날 노르웨이 재무부는 노르웨이 국부펀드가 글로벌 에너지 정책 흐름이 원유 기반에서 신재생에너지로 이동하고 있는 만큼 유가 취약성을 줄이는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신재생에너지에 투자할 수 있는 자금 규모를 1200억크로네로 현재의 두 배로 늘렸다. 예센 장관은 "재생에너지 인프라스트럭처 투자는 기금 투자 전략의 일부"라고 설명했다. 존 로 멀티에셋펀드 대표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신흥시장 비중을 낮추는 것은 노르웨이 경제가 글로벌 에너지 섹터에서 거리를 두려는 최근 행보와 일치한다"며 "신흥시장은 석유 수요를 견인하는 엔진이기도 한데, 국가 자산과 밀접하게 연관된 것에 투자하고 싶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달 노르웨이 정부는 국부펀드가 에너지 탐사·생산 회사를 투자 포트폴리오에서 제외하도록 했다.

[김덕식 기자 / 정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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