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상온 초전도체 개발"
SNS 전파·언론보도에 '주목'
증시선 테마주 널뛰기까지
해당 논문 따져보면 허점 존재
'국뽕' 앞세운 지지여론 강해도
과학계는 사실관계 잘 따져야
SNS 전파·언론보도에 '주목'
증시선 테마주 널뛰기까지
해당 논문 따져보면 허점 존재
'국뽕' 앞세운 지지여론 강해도
과학계는 사실관계 잘 따져야
테마주 광풍에는 브레이크도 없다. 최대주주가 보유 주식을 몽땅 팔아치워 한몫을 챙기고 훌쩍 떠나버려도 아무도 개의치 않는다. 들불처럼 퍼지고 있는 허위 정보와 성급한 투자를 경계하라는 금융당국의 경고도 애써 외면한다. 저마다 나도 언젠가 '한탕'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투기 심리로 '폭탄 돌리기'에 빠져버렸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7월 27일부터 2주간 테마주 회전율이 평소의 58배나 치솟은 종목도 있었다. 1주당 거래 횟수가 무려 12회나 됐다고 한다. 그런데 테마주 광풍에도 만고불변의 철칙이 있다. 모두에게 해피엔딩을 보장해줄 수 없는 제로섬 게임이라는 것이다. 크게 한몫을 챙기는 투자자의 주머니를 많은 수의 순진하고 선량한 '개미' 투자자가 힘겹게 채워줘야 한다는 뜻이다. 초전도체 테마주도 예외가 아니다.
언론과 증시를 발칵 뒤집어놓은 상온 초전도체 소동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지난 7월 22일 우리나라 과학자가 '아카이브'라는 인터넷 사이트에 3시간 간격으로 올려놓은 2편의 논문 원고(preprint)가 발단이었다. 2편 모두 'LK-99'라는 상온 초전도체 개발을 알리는 원고였다. 그런데 공동 저자가 서로 다르고 데이터도 조금씩 다르고 이론적 해석도 전혀 달랐다. 정상적인 연구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해괴하고 황당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공동 연구자가 돌출행동을 했다는 변명은 부끄러운 것이었다. 두 원고 모두에 제1저자와 주저자로 표시된 벤처기업 대표는 철저하게 입을 닫고 있다. 그런데 실질적인 대표 저자 역할을 자처하고 있는 연구교수의 정체가 놀랍다. 하필이면 2005년 국가가 적극 지원해서 '제2의 황우석'으로 키우겠다는 정보과학기술보좌관의 공개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바로 그 인물이다.
어쨌든 상온 초전도체를 개발했다는 주장이 매력적인 것은 사실이다. 인터넷 매체가 SNS의 일방적인 '주장'을 경쟁적으로 보도했다. 우리 언론도 7월 27일부터 어설픈 SNS 메시지를 '외신'으로 치장해서 퍼 날랐다. 증시가 발 빠르게 대응했고 결국 8월 1일에는 언론에 최초의 '초전도체 테마주'가 등장했다.
우리 사회도 들뜨기 시작했다. '우리' 과학자가 '세계 최초'로 '물리학의 성배'를 찾아냈다는 소식은 누구에게나 반가운 것이었다. 이제 '노벨상'은 따놓은 당상이 됐다. 세빛둥둥섬이 둥둥 떠오르고 원화가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기축통화가 되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9번째 도지사로 취임한다는 허무맹랑한 억지 '밈(meme)'도 등장했다.
물론 우리 과학자의 세계 최초를 기대하는 꿈과 기대를 나무랄 이유는 없다. 하지만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 건 아니다. 언론·증시·국민이 원한다는 이유만으로 '억지'가 '과학'으로 둔갑할 수는 없는 법이다. 어떤 경우에도 악취를 풍기는 '국뽕'은 경계해야 한다. 자칫하면 과학계에서 가장 부끄럽고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는 2005년 황우석 사태를 다시 소환하게 될 수도 있다.
우리 과학자가 '가두리 환경'에 갇혀 '야성'을 잃어버렸다는 어느 언론의 철없는 지적도 황당한 것이다. SNS 소동에 동참하는 것을 창조적 과학의 발전에 필요한 야성으로 착각했다. 뒤늦게라도 숟가락을 얹겠다고 허둥거리는 한전공대 모습은 절대 자랑스러운 것이 아니다.
실제로 상황은 매우 엄중하다. 상식을 가진 과학자가 입단속을 하고 있다. 최소한의 진실이라도 밝혀보겠다는 시도가 비뚤어진 애국심에 불타는 온라인에서는 용납되지 않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국민적 꿈을 거부하는 배신자라는 끔찍한 댓글 폭탄에 시달리게 된다.
상온 초전도체의 과학적 검증이 말처럼 쉬운 일도 아니다. 아카이브에 올려놓은 어설픈 원고의 '제조방법'을 흉내 내는 것은 검증이 아니다. 아무도 기록으로 남아 있는 제조법만으로 청자·백자를 만들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실제로 상온 초전도체 개발자들이 객관적 검증에 협조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미 자신들이 몰래 감춰놓은 '노하우(비법)'를 가지고 있다고 밝힌 형편이다. 정직성·개방성·비판성·합리성·자율성·민주성을 강조하는 '과학정신'을 실천할 의지가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해버린 것이다.
그렇다고 최소한의 절차도 무시하고 합리적 근거도 밝히지 않는 일방적 주장을 과학계가 속절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상온 초전도체의 강력한 근거라고 주장하던 부분적인 자기 부상 동영상을 초전도체와 아무 상관없는 흑연과 철을 이용해 완벽하게 재현했다. 개발자들이 구경조차 못했던 순수한 LK-99 단결정이 매우 큰 전기저항을 가진 사실상의 절연체라는 사실도 밝혀냈다. LK-99에서 파악됐다는 전기저항 감소가 초전도 현상이 아니라 불순물로 유입된 황화구리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도 확인했다. 현대과학이 동원하는 객관적 검증의 위력은 상상을 넘어서는 수준이다.
우리가 세계 과학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고 뻐갤 일이 아니다. 겉으로는 창조형 과학기술을 외치는 우리의 어설픈 교육과 연구개발에 대한 뼈를 깎는 반성이 필요하다. 그나마 앞장서서 황우석 사태를 악화시켰던 관료사회가 침묵해주었던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극도로 정제된 언행으로 고삐 풀린 망아지로 변해버린 언론·증시를 진정시켜준 한국초전도저온학회가 우리 과학계의 자존심을 지켜줬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케이션 명예교수]

매일경제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