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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핍하다고 아무 곳에나 의탁해서는 안 된다

장박원 기자

[열국지로 보는 사람경영-31] 관포지교에 버금가는 절친한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나이 차이가 있어 형과 동생 사이로 지냈죠. 그들의 공통점은 가난하지만 명석한 두뇌와 정세를 파악하는 안목이 뛰어났다는 것입니다. 대기만성의 인생 궤적도 비슷했죠. 변방의 진(秦)나라를 최고 선진국으로 만든 건숙과 백리해 이야기입니다. 주연은 동생 백리해입니다. 약소국 우나라 출신으로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그는 결혼한 뒤에도 궁핍한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의 진가를 알아주는 이가 아무도 없어 권력 중심부로 갈 수 있는 사다리가 전혀 없었습니다. 땅덩어리가 작고 인구가 별로 없는 우나라에서는 큰 뜻을 펼칠 수 없다는 점도 능력자인 그를 괴롭게 만들었습니다.

그의 아내 두씨도 이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가족을 생각해 머뭇거리는 백리해를 안타깝게 여긴 두씨가 먼저 결단을 내립니다. 그녀는 어느 날 남편에게 이렇게 권합니다. "남자는 사방 여러 나라에서 뜻을 펼쳐야 한다고 합니다. 당신은 장년에 이르도록 외지에 나가 벼슬을 구할 생각은 하지 않고 구차하게 처자식이나 지키며 곤궁하게 사시겠습니까? 저는 혼자서 살 수 있으니 염려마시고 뜻을 펼치세요."

아내의 격려로 백리해는 집을 떠납니다. 그는 먼저 강대국인 제나라를 찾아 기회를 찾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그를 추천해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타지에서 무직으로 오랜 기간 생활하다 보니 돈이 떨어졌습니다. 그는 걸식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운명처럼 만난 사람이 건숙입니다. 백리해에 비해 건숙의 처지는 조금 나았습니다. 건숙은 백리해를 보고 첫눈에 그가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대화를 나눠보니 정말 그랬습니다. 이때부터 두 사람은 의형제를 맺고 같은 집에 살며 세상을 바꿀 기회를 찾습니다.

백리해가 마을 사람들 소를 키워주며 생계를 이어가던 중 제나라 정세가 급변했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공손 무지가 군주를 시해하고 권좌를 차지했다는 것이었죠. 백리해 귀를 솔깃하게 만든 이야기는 새로운 군주가 널리 인재를 뽑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초청에 응할 생각으로 건숙의 의견을 묻습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부정적이었습니다. "공손 무지는 분수도 모르고 권력을 훔친 인간이라네. 지금 나라 밖에는 권좌를 노리는 왕손들이 적지 않아 결국 그는 성공하기 어려울 거야." 백리해는 건숙의 조언을 받아들였습니다. 건숙의 예상은 적중했습니다. 공손 무지와 그를 따르던 세력은 얼마 지나지 않아 권좌에서 쫓겨났습니다.

얼마 뒤 주나라에서도 좋은 기회가 생겼습니다. 왕자인 퇴가 소를 잘 키우는 사람에게 많은 양식을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건숙은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습니다. "장부는 다른 사람에게 가볍게 몸을 맡기지 않는 법이네. 벼슬을 하다가 그를 배신하면 불충한 것이고 어리석은 사람과 환란을 함께 겪는 것은 지혜롭지 못한 일이지." 건숙은 백리해가 미덥지 못했는지 직접 주나라로 가서 왕자 퇴를 만납니다. 역시 그가 우려했던 일이 일어납니다. 왕자 퇴는 추종할 만한 지도자가 아니었던 것이었죠. 그는 백리해에게 당부합니다. "왕자 퇴는 뜻만 크고 재주는 없는 인간이야. 측근들도 모두 아첨꾼이지. 언젠가는 분수에 맞지 않는 일을 하다가 실패할 게 분명하니 어서 떠나세." 이 예측도 맞아떨어졌습니다. 건숙의 안목 덕에 백리해는 환란을 피할 수 있었던 겁니다.

하지만 너무 오랫동안 기회를 잡지 못한 조바심과 가난이 백리해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고향인 우나라로 갔을 때 덜컥 벼슬을 받은 겁니다. 이때도 건숙은 말렸습니다. "우나라 군주는 견식이 모자라고 자기 생각만 내세우는 사람일 뿐 유용한 일을 함께할 인물이 아닌 것 같네." 하지만 백리해는 절박했습니다. "저는 너무 오래 빈곤에 시달렸습니다. 물고기가 땅에 떨어진 꼴이라 물을 적시는 일이 시급합니다." 백리해는 이렇게 우나라에 정착했습니다.

어렵게 자리를 잡았지만 그의 불운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진(晉)나라가 괵나라를 병합하고 곧바로 우나라를 멸망시키는 역사가 전개됐던 것이었죠. '가도멸괵' '순망치한'이라는 고사성어가 나온 바로 그 사건입니다. 백리해는 진나라 포로로 전락했고 진(秦)나라 목공이 진(晉)나라 헌공의 딸과 결혼할 때 몸종이 되는 신세가 됩니다. 종으로 살 수 없었던 백리해는 초나라로 탈출하며 다시 힘든 처지에 처합니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 /사진=AFP연합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 /사진=AFP연합
때를 만나지 못해 한동안 자기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 기업인으로는 애플 최고경영자 팀 쿡을 꼽을 수 있습니다. 대학에서 산업공학을 공부하고 경영학 석사 학위를 취득한 뒤 그는 인텔리전스 일렉트로닉스와 IBM, 컴팩에서 근무했습니다. 1988년 스티브 잡스에게 부름을 받기 전에 다녔던 이들 직장에서 그는 나름 좋은 평가를 받았고 승진도 빠른 편이었지만 잠재력은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물론 백리해처럼 불운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잡스를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의 팀 쿡은 없었을 겁니다. 애플로 자리를 옮기고 잡스와 한 팀을 이루면서 그의 진가가 나타났으니까요. 쿡은 잡스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애플이 흔들리지 않고 유지되는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백리해 앞에도 팀 쿡과 같은 그런 행운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다음 편에서 이야기를 이어가겠습니다. [장박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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