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첼레트 대통령은 금융위기가 불어닥치자 과감히 재정을 풀어 강력한 경기부양에 나섰다. 결국 칠레는 세계 경기가 침체에 빠질 때 안정적으로 경제를 운영했고 지난해 5.2% 성장에 이어 올해 6%대 성장률이 예상되고 있다.
그 비결은 경기침체에 대비한 재정 흑자 덕분이다. 침체기에 재정의 힘을 발휘한 것이다. 칠레도 선진국과 같이 선심성 정책의 유혹이 있었다. 칠레가 선진국과 달리 이런 유혹을 떨쳐버릴 수 있었던 것은 재정운용의 제도화였다. '균형 잡힌' 정권의 등장도 중요했지만, 2006년에 도입한 규정이 결정적이었다. 칠레 정부는 당시 재정운용지침을 세웠다. 경제성장률이 장기추세선 이하로 하락한 경기침체기 또는 구리 가격이 10년 추세선 이하로 하락한 시기에만 재정 적자를 허용했던 것. 반면 경제성장률과 구리 가격이 장기 추세를 웃돌면 정부는 재정 흑자를 의무화했다. 경제학자인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주장한 경기침체 때 정부의 역할을 키울 수 있도록 정책 구조를 짜 놓은 셈이다. 덕분에 칠레는 재정정책의 묘미를 만끽했다. 금융위기 한파를 뛰어넘었던 것이다. 한때 포퓰리즘 때문에 갈 길을 잃었던 칠레가 남미 종주국으로 떠오를 수 있었다.
그러나 미국과 유럽 각국은 칠레와 달랐다. 선진국 정부는 호황 때 장밋빛 경제전망을 하고 선심성 정책을 펼쳤다. 경기 호황기 때 경제가 마냥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정책 당국자들은 재정 퍼주기에 나섰다. 결국 그리스나 이탈리아는 방만한 연금제도를 비롯한 복지제도를 펼쳤다. 경기확장기에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다양한 감세정책을 통해 국민들 환심을 샀다. 하지만 남유럽에서는 재정위기로 결론이 났다. 미국에서는 경기를 부양하고 싶어도 더 이상 허약한 재정상태 때문에 부양에 나서지 못하는 양상이다.
미국은 여전히 장기 저성장 국면이 지속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유럽은 더 심각한 경기침체가 예상되고 있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 호황이라고 해서 재정수지를 건전하게 만드는 데 소홀히 한다면 미국이나 남유럽 국가처럼 재정파탄이 나지 말라는 법도 없다. 더욱이 해외 경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같은 나라는 탄탄한 내부 방어막이 필요하다. 그 가장 중요한 수단은 바로 건전한 재정이다. 이것이 최근 미국과 유럽 경제에서 얻을 수 있는 최대 교훈이다. 남미국가 중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첫 편입한 칠레를 무시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뉴욕 = 김명수 특파원 mskim@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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