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놀랍게도 예상과 달리 의외의 곳에서 늪에 빠져 헤매는 학생이 많았다. 학생들 대부분이 인생에서 추구할 만한 가치를 언어화해 본 경험이 없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은 삶인가를 놓고 부모나 교사 같은 어른은 물론이고 또래와도 이야기해 본 적이, 적어도 사춘기 이후에는 거의 부재했던 탓이다.
한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출세와 생존을 넘어서는 가치를 전달하지 못할 때, 이를 야만이라 한다. 한 번뿐인 목숨인데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묻고 답하는 일이 '진지 떠는' 무례한 짓으로 여겨질 때 이를 퇴폐라 한다. 한 나라의 교육이 야만과 퇴폐에 빠져 있는 땅이 바로 지옥이다. 그러고 보면 청년들이 이 나라를 '헬조선'이라고 하는 것은 좌절의 격정적 표출이 아니라 현실의 건조한 고발인 셈이다.
요즈음 인공지능이 가시화한 후 사교육 시장을 중심으로 '창조성 드립'이 한창이다. 하지만 초점을 잘못 잡은 경우가 부지기수다. 수많은 작가들을 상대해 본 경험에 따르면 창조란 일시적이고 기발한 생각이라기보다는 가치 있는 삶의 지속적 실천에 가깝다. 자신이 '바라보는 곳'에 대한 신념을 품고, 이를 자주, 반복해서 실행하는 것이 창조적 인간으로 사는 유일한 길이다.
창조는 지금과 다른 질서를 만들어 인간을 '더 나은 인간'으로, 세상을 더욱 살 만한 곳으로 바꾸는 일이다. 가치에 대한 질문 없이 이 일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한국 교육의 적폐를 청산하는 방법은 코딩과 같은 '문명의 교육'에 달리지 않았다. 독서처럼 아이들이 자연스레 삶의 의미를 묻도록 도와주는 '교육의 문명화'에 놓여 있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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