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처리를 위한 이명박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이 야당 거부로 불발됐다. 박정하 청와대 대변인은 어제 "여야가 합의해서 초청해주면 언제라도 갈 생각"이라는 이 대통령 의향을 밝혔고 곧바로 박희태 국회의장 주재로 여야 원내대표가 만났다. 하지만 김진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대통령 연설로 야당에 FTA 통과를 압박하는 분위기가 조성될 우려가 있고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정략적으로 이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대통령이 국정 현안을 국민대표 기관에 설명하는 건 의회주의 국가의 기본상식이다. 미국, 유럽 선진국에서 대통령이나 총리가 주요 법안을 처리하기 위해 의회에 나가는 게 거의 일상화돼 있다. 다만 대통령이 국회 연설을 하려면 본회의 일정을 조정해야 하고 이는 여야 합의가 필요한 사안이다. 여당의원만 모아놓고 연설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야당이 싫다고 하면 굳이 해야 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국가지도자가 정치쇼를 하려는 것도 아니고 국가 이익이 걸린 중대사안에 관한 입장을 밝히겠다는 데 그걸 거부하는 건 참으로 옹졸한 태도다. 물론 야당도 나름 이유를 댈 수는 있을 것이다. 한국 정치풍토에선 청와대가 국회를 경시하는 관행이 굳어져온 탓에 대통령의 시정연설 사례가 드물다. 매년 예산안 처리를 앞둔 시정연설도 총리가 대독하는 게 관례화돼 있다.
이 대통령 역시 취임 첫 해인 2008년 7월 18대 국회 개원연설과 같은 해 10월 시정연설을 한 차례씩 행한 이후 국회에 발길을 끊었다. 그러니 야당으로선 "국회가 대통령 아쉬울 때 들러리를 서는 기관이냐"고 반발할 만도 하다. 또 대통령 연설에 이목이 집중되면 야당의 FTA 비준 선결요건 주장이 퇴색할 수 있다는 계산도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FTA 비준을 위한 시정연설 필요성은 누차 지적돼 왔고 이 대통령도 지난주 여야 대표를 청와대에 초청해 방미성과를 설명하면서 의향을 밝힌 바 있다. 더구나 야당도 틈만 나면 이명박 정부의 소통부족을 질타해 왔으면서 소통 기회를 원천봉쇄하려는 건 명백한 이율배반이다. 이런 저런 논리를 따지기 전에 대통령의 국회 연설을 막는 불통(不通)국가가 지구상에 또 있겠는가. 여야는 10ㆍ26 재보선 이후 이 문제를 다시 논의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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