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덕분에 서울 도심지에 살면서도 사철 변하는 숲을 볼 수 있어 행복하다.
숲의 사계절은 다 좋지만 해가 갈수록 겨울 숲이 좋아진다. 겨울이 되면 까치 소리가 맑아지는 것도 겨울 숲이 좋은 이유 중 하나다.
나른한 봄이나 무더 운 여름. 혹은 먹을 것이 풍성한 가을의 까치소리는 무척 게으르 게 들리는 데다가 또 저녀석들이 누굴 내쫓고 있을까 싶어 몹시 신경이 쓰인다. 종종 베란다에 서서 바라보고 있노라면 까치가 숲에 있는 동안은 참새들이 얼씬도 못 한다. 산비둘기도 슬슬 눈치를 보며 이 가지 저 가지로 까치를 피해 다닌다.
먹이사냥을 나온 고양이는 까치의 눈을 피해 늘어진 개나리 줄기 밑을 타고 몸을 잔뜩 움츠린 채 어슬렁거린다. 심지어 쓰레기 봉투를 물고와 내용물을 맘놓고 꺼내 먹으려던 개들도 잽싸게 날아와 공격하는 까치를 당해내지 못하고 슬금슬금 꽁무니를 빼기 일쑤다. 텃새인 까치의 이런 텃세 때문에 난 까치소리가 늘 거슬린다.
며칠 전 어느 신문에서 까치가 제 영역을 침범한 독수리를 쫓아내고 있는 모습을 담은 사진을 보았다.
한 친구는 그 까치가 노근리와 매향리 사건, 소파 개정 문제 등 미국에 대해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매듭 짓지 못한 우리 정부 보다 낫다고 했다.
그러나 까치의 생태를 일년 내내 지켜보고 있는 나로서는 생각이 달랐다. 까치의 그런 모습이 자기 권리를 지키는 것이라기 보다는 '텃새의 텃세'로 보였기 때문이다. 까치의 영역 이란 애초부터 참새와 산비둘기와 개와 고양이가 공유해야 할 삶의 터전이 아니던가.
우리 인간은 어떤가. 까치보다 나을 게 없다. 가진 자들의 텃세, 대학을 나온 자들의 텃세, 같은 직장인들의 텃세, 문화 권력자들의 텃세… 인간의 텃세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마치 이 세상은 텃세를 부리는 사람과 텃세를 당하는 사람 두 부류로 나뉘어 있는 것처럼.
사람이 까치와 다른 점은 물질의 영역이든 추상의 영역이든 그걸 공유하는 질서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점이리라. 그 길은 어렵지 않다. 내 직장에 불쑥 들어와 재활용 쓰레기를 가져가도 되느냐고 묻는 할아버지에게 마음 문을 열고 공송히 이야기하는 일부터 시작하면 되니까.
<사계절출판사대표> mskang@sakyej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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