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약한 시간 워라밸 쓰는 韓
직원에 AI 던져만 주지 말고
회사 뿌리부터 AI 맞춤 재설계
“인공지능(AI)을 도입했는데 왜 회사 생산성이 안 오를까?”
최근 기업 관계자들을 만나면 빠지지 않고 나오는 주제다. 챗GPT, 제미나이, 클로드 등 생성형 AI를 쓰면서 데이터 분석, 보고서 작성, 코딩 작업이 엄청나게 빨라졌다. 실제로 미국 MIT 연구팀에 따르면 AI 덕분에 직원들의 문서 작성 속도가 40% 빨라지고, 코딩 시간도 56% 단축됐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직원의 일 처리는 빨라졌는데 조직 전체의 성과는 제자리걸음이다. 수많은 경영진들이 이 기묘한 현상을 두고 골머리를 앓는다.
전문가들의 진단은 명확하다. 직원 개인이 AI로 아낀 시간이 조직의 핵심 가치로 이어지지 못하고 중간에서 ‘증발’해 버리기 때문이다. 스페인 IE 경영대학원 조사에 따르면 AI 덕분에 업무시간이 주당 평균 2시간 46분 절약되지만, 그 시간의 84%는 의미 없이 공중분해된다.
주범은 ‘AI 워크슬롭(Workslop)’이다. 겉보기만 번드르르하고 알맹이는 없는 저품질 AI 산출물을 뜻한다. AI 덕분에 보고서 작성이 쉬워지자 조직 내에는 문서 과잉 생산이 일어난다. 한 직원이 AI로 10분 만에 뚝딱 만든 워크슬롭을 팀장이 팩트 체크하고 수정하는 데 도리어 2시간을 허비하는 병목 현상이 발생한다. 앞 단계에서 아낀 시간이 뒷 단계의 대기 시간으로 낭비될 뿐, 전체 결과물의 양은 변하지 않는 것이다.
한국의 고용 경직성도 한몫한다. 노동 유연성이 높은 미국에서 AI는 대체되지 않으려면 반드시 ‘업스킬링’해야 하는 생존 무기다. 반면 한국 직장인들은(필자를 포함해) 위에서 매일 AI를 쓰라고 쪼니 적당히 쓰는 척만 하는 경향이 있다.
AI를 열심히 안 쓰는 이유는 단순하다. 8시간 걸릴 일을 AI를 써서 4시간 만에 끝내봤자 남은 4시간에 대한 보상은커녕 남의 일까지 떠맡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결국 AI로 아낀 시간을 창의적인 활동에 쓰는 게 아니라 워라밸을 하는 데 쓴다.
국내 기업 대부분은 직원에게 AI라는 스포츠카 키를 던져주고 비포장 도로를 달리라고 주문하고 있다. AI로 생산성을 높이려면 AI 도입에 맞춰 역할과 책임(R&R), 워크플로, 보상 체계 등 회사 뿌리부터 전면 재설계가 필요하다.
“일을 빨리 끝내면 나만 손해”라는 생각이 지배적인 회사에선 혁신이 일어날 수 없다. R&R을 명확히 하고 일을 얼마나 오래, 많이 했는지가 아니라 어떤 결과를 냈는지로 평가판을 새로 짜야 한다. AI로 시간을 줄이고 남은 시간에 더 가치 있는 아이디어를 낸 직원에게 확실한 보상을 줘야 한다.
직원들에게 알아서 AI를 잘 쓰라고 방치해서도 안 된다. AI가 잘하는 일과 인간이 해야 할 일을 구분해 워크플로를 다시 짜야 한다. 단순 정보 취합, 데이터 분류, 초안 작성 등 반복 업무는 AI가 시작부터 끝까지 일괄 처리하도록 프로세스를 이어주고, 인간은 이를 검증하고 고도의 전략적 판단을 내리는 최종 승인자로 역할을 격상시켜야 한다.
미국 기술기업 ‘허니웰’ 사례가 눈길을 끈다. AI로 효율을 높인 직원에 대한 평가·보상 체계를 확립해 심리적 안정감을 줬다. “AI를 어떻게 쓰는지 모르겠다”며 막막해하는 직원을 위해 부서마다 ‘AI 앰버서더’를 배치했다. 이들을 통해 워크슬롭을 양산하지 않도록 교육해 전 직원의 AI 스킬을 상향 평준화했다.
기존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 과정에서 조직 내 반발 등 ‘불편함’이 따르겠지만, 더는 늦출 수 없다. 스포츠카는 죄가 없다. 고속도로를 제대로 깔자.
[고재만 디지털테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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