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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24시] `테세우스의 배`와 숭례문

사진설명
그리스신화의 테세우스는 반인반우(半人半牛)의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처치하고 그에게 제물로 바쳐진 아테네인들을 구한 영웅이다. 그리스인들은 조국을 융성케하고 수많은 정복전쟁에서 승리한 그를 기리기 위해 해마다 그가 타고 다녔던 배를 몰고 델로스섬까지 해상 퍼레이드를 벌였다. 그러나 나무로 만든 배를 수리할 때마다 부품과 선체를 새 것으로 바꾸다 보니 종국에는 테세우스가 배를 만들 때 사용한 재료는 아무 것도 남지 않게 됐다. 그러면 이 배는 테세우스의 배인가, 아닌가. 정체성 개념에 관한 형이상학의 고전적 화두다.

관점에 따라 구구한 해석을 낳을 수 있는 문제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체성이란 '실체'가 아니라 하나의 '지향성' 속에 있기 때문에 수리한 배를 테세우스의 배로 봐도 좋다는 결론을 내렸다.

허무하게 불타 버려 정초 국민 가슴에 상흔을 남긴 숭례문(남대문)을 원형대로 복원한다 해도 과연 국보 1호로서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를 놓고 논란이 한창이다.

보물 479호였던 양양 낙산사 동종은 완전 소실돼 실체를 잃어버린 사례지만 남대문은 건축물 기반인 석축이 남아 있기 때문에 판단을 내리기 모호하다. 행정 관계자들 의견도 대립된다. 일각에선 누각 일부와 석축이 남아 있는 이상 원형 복원이 가능하다면 국보 지위를 인정해 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국보 가치를 지닌 핵심 실체는 석축이 아니라 누각이라는 점에서 누각이 불타 버린 남대문은 국보의 의미를 상실한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찮다. 테세우스의 배와 같은 맥락의 국보 정체성 논쟁이다.

아리스토텔레스적 관점에서 본다면 남대문이 갖는 국보 정체성은 원형을 여하히 복원하느냐보다 문화유산 보존에 대한 국민적 지향성에 달린 것이 아닐까. 소실된 남대문이 국민 마음 속에 '뼈아픈 각성'으로 부활한다면 복원 후 국보로서의 가치를 굳이 부인할 이유는 없을 것 같다.

[이창훈증권부tan@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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