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6월 일본 정부는 '일본군은 군대 위안부 문제에 관여하지 않았다'라는 입장을 발표한다. 이를 보고 분노한 고 김학순 할머니는 국내 최초로 위안부 피해 증언을 했다.
김 할머니는 1924년 만주에서 독립운동가의 딸로 태어났다. 생후 얼마 안 돼 아버지를 잃고 15살 되던 해 기생집 수양딸로 보내졌다. 김 할머니는 양아버지와 함께 떠난 중국에서 일본군에게 붙잡혀 위안부 생활을 하게 된다.
조선과 중국을 오가던 조선 남자를 만나 탈출에 성공해 결혼하지만 해방 후 남편과 자식을 모두 잃고 혈혈단신으로 살아왔다. 김 할머니는 "만약 내가 가족이 있었다면 증언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김 할머니의 증언 후 많은 피해자들이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됐다. 사회의 따가운 눈초리에 증언하지 못했던 피해 할머니들은 김 할머니의 증언에 용기를 얻었다. 김 할머니는 다른 피해 할머니들과 함께 여성 인권 운동가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
할머니들은 위안부 피해 사실을 묘사한 그림을 그려 전시했다. 김 할머니는 위안부 피해 사실을 다룬 연극 '노을에 와서 노을에 가다'에 직접 출연하기도 했다. 할머니들의 증언은 애니메이션, 영화로 제작돼 전 세계에서 상영됐다.
1992년 할머니들은 매주 수요일 서울 일본 대사관 앞에서 위안부 사실인정과 사과를 요구하는 '수요집회'를 열었다. 그후 20년 뒤인 2011년 12월 14일 수요집회 1000회를 맞아 일본 대사관 앞에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졌다. 소녀상은 위안부 피해 사실을 알리고 일본의 사과를 촉구하는 상징적 의미로 세계 곳곳에 설치되고 있다.
일본군의 진심 어린 사과만을 원했던 김 할머니는 결국 1997년 12월 16일 사과를 듣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김 할머니는 무궁화 꽃 속 단심(丹心)을 닮아 '단심 할머니'라고도 불린다. 무궁화의 꽃말은 '영원히 피고 또 피어서 지지 않는 꽃'이다.
김 할머니는 생전 "한국 정부나 일본 정부나 죽어버리면 그만일 나 같은 여자의 비참한 일생에 무슨 관심이 있으랴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하지만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지 20년이 지난 지금도 역사를 바꾼 할머니의 용기는 우리 마음 속 지지 않는 꽃이 됐다.
올해 세계 위안부의 날을 맞아 전국 곳곳에서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14일 오후 서울역에서는 청소년 300명이 위안부 문제 해결 촉구를 위한 플래시몹을 선보인다. 같은 날 오후 6시부터 청계 광장에서 위안부 문제를 인정하지 않는 일본을 규탄하는 행사가 진행된다. 또 오늘을 시작으로 이달 31일까지 동아 운수에서 운행하는 서울 151번 버스에서 좌석에 앉아있는 소녀상을 만날 수 있다.
[디지털뉴스국 노윤주 인턴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매일경제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