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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학폭에 짓밟힌 소녀 "착하게 살면 하늘도 감동? 다 거짓말이에요"

지면 A17
초등생 학우들 투명인간 취급…왕따 못이겨 화장실 도망가자 떼지어 쫓아와 엿보며 조롱
"학폭 상담하자 교감이 성추행" 담임은 왕따 모른척하고 외부서 가해학생 부모 만나
재심끝에 학폭 인정받았지만 가해자측·학교 진정한 사과없어…檢, 뒤늦게 성추행의혹등 재조
왕따친구 돕다가 왕따…피해가족 2년여 힘겨운 싸움
사진설명
"세상이 무서워, 진실을 왜 모르는 것일까? 착하고 바르게 살면 반드시 하늘이 감동한다는데 그건 거짓말이야. 내가 당한 괴로운 시간들이 다 꿈이기를…." 충남에 사는 중학교 1학년 김수진 양(가명·14)은 개학이 두렵다. 두 달 뒤 2학년에 올라가면 만날 새로운 친구들과 선생님 생각에 들떠 있을 겨울방학은 오히려 트라우마의 연속이다.

천안 C초등학교 5·6학년 시절 친구들의 집단따돌림(왕따) 때문만은 아니다. 이미 2년이 지났고 가해 학생들이 없는 중학교에 다니고 있는데도 수진 양의 상처가 아물지 못한 이유는 따로 있다. 공식적인 사과 한마디 없는 가해 학생·학부모는 물론 사건을 조직적으로 덮는 데 급급했던 담임교사, 상처받은 수진 양에게 몹쓸 짓을 한 교감, 모두가 아물 수도 있었을 상처를 덧나게 했기 때문이다.

수진 양은 초등학생 때 왕따를 당한 친구를 도왔다. 그러자 수진 양을 향한 또 다른 왕따가 시작됐다. 같은 반 파티 땐 '투명인간' 취급받기 일쑤였고 따돌림을 못 견뎌 화장실로 도망가자 떼를 지어 따라와 옆 칸으로 올라간 뒤 수진 양을 내려다보며 욕설하고 조롱했다.

"학교를 갈 때면 눈물이 먼저 나온다. 오늘 하루를 또 어떻게 견뎌야 할지, 두려움이 앞선다." 외면당한 진심은 세상을 향한 불신으로 이어졌다. 그래도 희망의 끈을 놓고 싶지 않았던 수진 양은 일기장에 두려움을 고백하고 마음을 다잡았다. 어른들에게도 도움을 청했다.

하지만 수진 양의 구원의 손길을 접한 교감은 끔찍한 행동으로 수진 양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피해자 학부모에 따르면, 초등학교 5학년 2학기 당시 새로 부임한 교감은 학교폭력 상담차 찾은 사춘기 소녀 수진 양의 엉덩이 등을 만졌다.

왕따가 극에 달했던 초등학교 6학년 1학기(2016년 5월) 학생 대상 설문조사에서 학교폭력 피해 사실을 묻는 항목에 수진 양은 'X'라고 썼다. 담임교사가 지켜보는 앞에서 학교폭력 피해를 입은 사실이 있다고 쓸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도 수진 양은 포기하지 않았다. '좋아하는 노래 가사를 적으라'는 또 다른 질문에 "네가 만난 세계라는 건 잔인할지도 몰라, but strong girl…"이라는 가수 태연의 노래 '아이(I)' 가사를 적었다. 왕따를 극복하기 위해 무한 반복해서 듣던 노래 가사로 수진 양은 어른들에게 소리 없이 속마음을 드러내고 진실을 외쳤던 것이다.

수진 양과 부모의 지난 2년은 은폐와 몰상식에 맞선 힘겨운 투쟁이었다. 시작은 학교였다. 수진 양이 다녔던 C초등학교는 설문조사 다음달인 2016년 6월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를 열고 "학교폭력이 아니다"고 결론지었다. 가해 학생이 받은 처벌은 서면 사과 정도였다. 하지만 수진 양과 부모의 재심 요청에 따라 열린 충남지역위원회 학폭위는 친구들의 학교폭력을 공식 인정했다. 학교와 가해 학생 측이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청구한 행정심판은 기각됐다. 결과는 승리한 것처럼 보였지만 과정은 수진 양과 부모에게 또 다른 생채기를 남겼다. 학교 학폭위가 열리기 이전 수진 양 측이 담임교사에게 '명백한 학교폭력'이라며 문제를 제기하자, 담임은 되레 "교권 침해"라며 협박을 했다. 자신이 교총과 전교조 회원임을 강조하며 "무리한 요구를 계속할 경우, 단체를 통해 대응하겠다"고 했다. 아울러 행정심판 과정에서 만난 가해 학생 부모의 손에는 수진 양의 비밀소통 일기글과 학폭 실태조사 쪽지 같은 수진 양 개인 자료가 들려 있었다. 해당 자료는 담임이 학교 밖 카페에서 가해 학생 부모와 만나면서 유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수진 양 부모는 수진 양이 초등학교를 졸업한 지난해 2월, 교감과 담임교사를 각각 강제추행과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충남지방경찰청은 같은 해 6월 두 사건을 기소의견으로 대전지방검찰청 천안지청에 송치했다.

하지만 성추행 혐의를 받는 교감이 완강히 부인하자 검찰은 '시한부 기소중지' 처분을 내렸고, 수진 양 개인 자료 유출 의혹을 받고 있는 담임교사는 아예 기소하지 않았다. '담임교사가 학교 밖으로 수진 양 개인정보를 가져간 것은 위법이 아니냐'는 질문에 검찰은 "수진 양을 포함한 전체 학생들의 자료를 모두 가져갔고, 가해 학생 부모가 담임 선생님이 자리를 비운 사이 몰래 자료를 본 것"이라며 납득하기 힘든 이유를 댔다.

온통 캄캄한 나날의 연속이었다. 수진 양 어머니 손 모씨는 "학교폭력이 아니라며 쉬쉬하고 은폐하려는 학교와 형사법상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처벌에 미온적인 수사당국을 보면서 억울함만 늘었다"며 "모범생이고 착했던 우리 아이가 이렇게 망가졌는데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작년 말과 올해 초 매일경제가 사실 확인과 입장을 묻기 위해 연락하자 담임교사와 가해 학생 부모는 전화를 끊었다. 수진 양 측의 항고로 담임교사의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사건은 대전고검에서 재수사가 진행 중이다.

교감은 "법적 분쟁이 진행 중"이라며 입장이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수진 양과 어머니는 앞으로 타협하거나 포기하지 않겠다고 했다. 복수보다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기지 않아야 한다는 신념 때문이다. 대전지검 천안지청은 C초등학교 교감의 성추행 사건에 대해 재수사에 착수했다고 5일 밝혔다.

[천안 = 나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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