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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가동연한은 65세

마석우 기자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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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석우 변호사의 법률 이야기-100] 불행한 사건이었다. 5세가 채 되지 않은 어린아이가 수영장 풀장으로 떨어져 사망했다. 수영장 시설이나 안전 관리에 문제가 있었던 게 화근이었다. 가족의 슬픔이야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마음을 추스르고 수습을 하고자 한다. 형사 고소를 통해 응어리를 푸는 것도 푸는 것이지만 민사 책임을 물어 배상을 받고 싶다. 마침 민법은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위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자에게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는 조항을 두고 있으니(민법 제750조), 사고의 원인이 수영장 측에 있다는 게 밝혀진 이상 배상받은 데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 그런데 얼마까지 배상을 받을 수 있을까? 그 이전에 어린 아이가 안타깝게 생명을 잃은 사건에 대해 그 손해를 돈으로 따진다는 게 가능한 일이기는 할까? 생명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해 배상하도록 명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나 민법의 규정상 손해는 금전으로 배상하는 게 원칙이고 그 배상 범위도 그 사건에서 통상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손해를 한도로 하고 있다. 불행한 사고를 당한 어린 아이에게 발생한 손해를 금전적으로나마 계산해 상속 형태로 그 가족에게 귀속시켜 주는 게 우리 상식에 맞기도 하다.

그럼 사망사고 시에 그 손해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가령 그 어린아이의 장래에 있었을 인생의 기쁨, 가능성 등은 고려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법정은 현실적인 곳이다. 입증할 수 없는 사항들은 고려하지 말기로 하자. 크게 두 가지 종류의 손해를 생각할 수 있다.

정신적 손해가 그 첫째다. 사망으로 인해 정신적 충격이 있으리라는 건 누구라도 인정할 수 있는 사실이다. 그 액수는 법원 판례에 의해 정형화돼 있다. 다음으로 재산상 손해다. 생명 상실에 재산상 손해를 매긴다는 게 이상하긴 하지만 가령 병원비나 장례비 같은 게 소요된 경우를 생각하면 누구라도 고개를 끄떡이리라.

그다음이 문제다. 재산상 손해 가운데 일실수입이라는 게 있다. 소득이라는 관점에서 그 아이가 살아 있었다면 있었을 일을 생각해보자. 통상적으로 고등학교까지는 학업을 마치지 않을까? 대학이야 반드시 진학한다고 볼 수 없지만 남자인 경우 군복무를 해야 한다. 이 기간을 빼놓고는 취업을 해 소득생활을 하게 마련이다. 물론 어떤 직업을 택해 그 직업에 따른 얼마의 소득을 받게 될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최소한 도시에서라면 도시일용노동자, 농촌에서라면 농촌일용노동자로서 소득생활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 통상적인 액수는 통계적으로 입증이 가능하기도 하다.

정리해보자. 사망사고로 인한 손해로 정신적 손해와 재산상 손해를 상정할 수 있고, 재산상 손해에는 그 사망사고로 인해 현실적으로 발생한 손해와 소위 일실수입이 있다. 살아 있었더라면 소득활동을 통해 평생 받을 수 있었을 소득액이 일실소득인데, 최소한 도시(농촌)일용노동자로서 통상적으로 받는 소득액이 기준이 된다.

그런데 여기에서 하나의 변수가 빠져 있다. 언제까지 소득활동이 가능하냐 문제다.

"육체노동의 경험칙상 가동연한이 이제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만 65세다"라고 선언한 최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여기에 위치한다(대법원 2018다248909). 이제 5세 아이의 일실수입은 계산이 가능해진다(이 글에서 사례는 원래 사건을 변형·단순화한 것이다). 피해 아이가 성인이 된 후 21개월의 군복무를 마친 때부터 만 65세가 되는 때까지의 도시일용노임을 적용해 현가로 계산하면 구체적인 액수가 나온다.

5세가 채 안 됐던 아이의 불행한 죽음에 대한 배상금은 우선 그 아이에게 인정되고 그것은 다시 상속 형태로 그 부모에게 전해지게 마련이다. 과거 같았으면 가동연한 60세로 계산된 일실수입이었지만 이 사건에서만큼은 65세로 계산된 일실수입이 가산됐다. 그러나 아이의 안타까운 죽음이 비단 그 부모에게만 그 의미를 가졌던 것은 아니다.

과거에는 사람이 일할 수 있는 마지막 연한, 가동연한을 60세로 봤다. '이제는 65세다'라는 게 이번 대법원 판결을 통해 선언됐다. 여러 가지 함의가 있겠지만 나는 '사람의 생명이 그만큼 귀하다'라는 뜻으로 읽힌다. 그 아이가 우리 사회에도 큰 의미를 남겼다고 봐야 할 것 같다.

[마석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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