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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이 만난 사람] 대한상의 회장 취임 1주년 맞은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

지면 A22
"대타협 못하면 한국호 좌초…勞使政 머리 맞대고 살길 찾자"
소문대로였다. 박용만 회장은 1시간 동안 인터뷰에서 거침없이 말을 쏟아냈다. 탄탄한 콘텐츠, 그러면서도 잘 정리된 논리를 전개했다. 가끔 걸쭉한 육두문자도 섞었다. 재벌 총수이지만 입담 좋은 동네 조기축구회 아저씨 같은 인상도 갖고 있었다. 이런 능력이 재계는 물론 정부, 시민사회와 잘 소통하는 능력을 갖게 했나보다. 이달로 대한상의 회장 취임 1주년을 맞는다. 박 회장은 춘천 라데나리조트에서 가진 서양원 매일경제신문 부국장 겸 산업부장과 인터뷰에서 현재 한국 경제 현안에 대한 입장을 직선적으로 얘기하며 솔루션을 제시했다. 박 회장은 "상의 설립 목적이 기업인들의 사회적 지위 향상과 상공업 발전을 통해 국가경제 발전에 이바지하자는 것"이라며 "이 두 가지에 초점을 두고 1년간 상의를 이끌어왔다"고 자평했다. "상의는 법에 근거한 법정단체입니다. 이익단체와는 달라요. 상공인 이익도 대변해야 하지만 다수가 공감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해선 안 됩니다. 옳은 이야기, 국가경제에 도움되는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생각엔 지금도 변함이 없어요." 그가 상의 회장을 맡은 뒤 상의 위상은 예전보다 크게 높아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열정적이고 활발한 대외활동을 벌이는 그의 개인기 덕도 있을 것이다.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그가 날아다닌 국내외 하늘길만 40만㎞에 달한다. 지구 약 10바퀴를 돌았다.

■ 대담=서양원 산업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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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재계와 정치권은 물론 재계와 대척점에 서 있는 진영의 목소리도 귀담아 듣고 소통하고 있다. 얼마 전엔 기업소득환류세가 이중과세가 아니라는 전문가 이야기도 듣고 참조했다고 한다. 덕분에 대한상의도 좀 더 유연해지고 사회와 소통한다는 이미지가 강해졌다. 제도 도입 취지엔 공감하지만 경제 흐름이나 기업 사정에 맞게 좀 더 유연하고 촘촘한 입안과 시행을 요구했다. "왜 이 제도를 내놓았는지 정책 당국자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취지에 공감합니다. 다만 그동안 기업들이 투자를 못한 것은 의도적인 게 아니란 건 분명히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는 "우선 기업마다 받을 영향이 다르다"며 "타격을 많이 받을 곳이 있을 것이고 세금을 덜 낼 곳도 있는데, 각 개별 기업 사정을 충분히 고려해줬으면 한다"고 제안했다.

"지난 정부에서 법인세율을 25%에서 22%로 낮춰주며 투자하라고 독려했지만 결과가 안 나오니 정부도 답답하겠죠. 그런데 제도 시행 뒤 상황이 바뀌면 어쩔겁니까? 정권 바뀌고 '비율 높이자' '항목 늘리자' 식으로 가면 지나치게 오용될 수 있는데 이걸 어떻게 막습니까? 그러니 일몰제를 두자는 거죠."

좀 더 공격적인 경제정책과 금리정책도 주문했다.

박 회장은 "새 경제팀이 아주 적극적으로 일을 하고 있고 지금이 적극적ㆍ공격적 정책이 딱 필요한 시점"이라며 "한은도 금리 인하로 답하는 게 옳지 않나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당장 기준금리를 2% 아래로 내리자는 건 아니다"면서도 "우리나라 기준금리가 2% 아래로 내려가 본 적이 없는데 (2% 이하로 인하했을 때) '미지의 세계'에 대한 불확실성은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좀 더 어그레시브(aggressive)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통상임금과 시간제 근무, 유연근로제, 임금피크제, 정년연장 등 쏟아지는 각종 노동 관련 이슈에 대해선 자칫 기업이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 올 수 있다며 염려했다. 그러면서도 해법은 '대화와 타협'이라고 강조했다.

박 회장은 "통상임금만 해도 인건비가 10~20% 높아질 거란 기업도 있는데 여기에 근로시간 단축, 임금 인상 요구 등이 더해지면 기업 부담이 30~40%까지 상승할 수 있다. 맞는 것도 있고 틀린 것도 있겠지만 회사의 지불능력을 고려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이건 회사 보고 망하거나 외국으로 나가버리란 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노측은 하나도 절대 양보하기 싫어하고 사측은 사측대로 방어만 하려고 하는데 이대로 접점을 찾지 못하고 대치만 하다가는 공멸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박 회장은 "임금구조 개편을 놓고 사회적 대타협을 해야 할 시기"라며 "노사정이 머리를 맞대고 앉아 허심탄회하게 대화하고 소통해 타협을 이뤄내는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노동시장 유연화 필요성도 역설했다. "최근 조사 결과를 보니 대한민국 상위 5% 하한선이 연봉 6000만~7000만원이고 평균은 8700만원 정도인데, 대기업 생산직 숙련직은 상위 5% 안에 들어간다는 말"이라고 설명했다. 박 회장은 "노동 숙련도가 어느 순간에는 더 높아지지 않는데 임금 상승에 호봉을 더해서 임금이 계속 올라가면 젊은 사람, 비정규직 몇 명을 뽑을 수 있는데도 못 뽑게 된다"며 "노동시장 경직성이 높으니 한 사람을 지키려면 새로운 근로자를 뽑을 수 없다"고 말했다.

올해 초 반짝 열기가 달아올랐다 최근 지지부진한 규제 개혁. 그가 제시한 키워드는 '사후 규제'다. "마음껏 일을 벌이게 놔둬야 합니다. 사전 규제로 진입 장벽을 쳐놓고 막으면서 어떻게 창업하고 가게가 생겨나고 고용이 창출되고 돈이 돕니까. 일을 벌이게 해두고 큰 틀에서 가이드라인을 줘서 관리하고 좀 믿고 참아 봐야 합니다. 그러다 제도를 악용하고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은 사후 규제로 엄벌하면 됩니다."

박 회장은 "큰 규제도 개혁해야 하지만 서민들이 체감하는 생활 규제를 과감하게 깨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규제 개혁 주창자가 아닌 시행자를 보호해줘야 한다"며 "규제 개혁에 앞장섰는데 나중에 '특혜를 주려 하는 것 아니냐'는 식으로 처벌하면 누구든 몸을 사리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최근 우리 경제의 삼성과 현대차에 대한 높은 의존도가 국가 리스크 요인이라는 지적에 대해 단호한 답을 내놓는다. "문제는 두 회사가 너무 크기 때문이 아니라 나머지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삼성과 현대차가 더 잘할 수 있도록 밀어주고, 다른 기업도 더 클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는 거죠. 물론 두 회사가 잘못됐을 때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을 잘 들여다보고 대비해야겠죠."

두산그룹 이야기로 주제를 옮겼다. 박 회장은 "그룹의 세 번째 기둥(신성장동력)이 필요하다"며 "해외 기업 인수ㆍ합병(M&A)을 통해 새로운 영역을 개척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공업 중심의 수주산업, 건설기계ㆍ장비 중심 장비사업에 이어 세 번째 성장동력을 발굴하겠다는 것. 최근 국내외 연료전지 기업 두 곳을 잇따라 M&A한 것도 이 같은 계획의 일환이다.

그는 "성장할 수 있을, 토대를 삼을 정도로 기술 진보를 이룬 기업 몇 곳을 알아보고 있다"며 "연료전지 사업을 포함한 몇 개 분야를 후보로 정해놓고 4~5년 키워본 뒤 주력 산업을 무엇으로 할지 결정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리더십과 조직관리에 대한 언급도 잊지 않았다.

그는 "(기업 경영에선) 리더 개인의 직관에 의존하지 않고 과학적 프로세스를 거친 의사 결정과 인사가 중요하다"며 "소통, 과학적 연구와 투자, 구성원 간 컨센서스를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냉혹하게 내부경쟁으로 직원들을 몰아가기보단 '임직원 만족, 따뜻한 성과주의'를 바탕으로 한 지속 가능한 경영철학을 강조한 말이다. 박 회장은 과학적이고 합리적 의사 결정과 인사구조를 갖추는 게 진정한 '사람 중심' '인재 중심' 기업이 되기 위한 필수조건이라고 덧붙였다.

현 정부의 주요 화두인 남북 통일에 대해선 "북한 자원 활용과 노동력 흡수 등은 지엽적인 일이고 통일로 한국의 지정학적 포지션이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며 "진정한 대박"이라고 했다. 그는 "북한 주민, 특히 어린이들에 대한 인도적 지원이 계속돼야 하고 미래에 이들이 한국 국민이 됐을 때 잘 적응하고 섞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감성적 차원이 아니라 우리 후손에게 물려주기 위한 투자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방한으로 고조된 한ㆍ중 관계에 대해선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할 것을 주문했다. 그는 "중국도 절대권력이 인민을 좌우하는 시대가 아니라 컨센서스에 따라 움직이는 사회가 돼가고 있고 노동자 권리도 커지고 있다"며 "우리 기업도 옛날 사고와 방식을 고수하지 말고 중국에서 현지에 공헌하며 잘 섞일 수 있는 방안을 잘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사진설명
■ 말단직원부터 대통령까지 17만명 아우르는 소통의 달인 박 회장은 근엄하고 독단적일 거란 재벌 총수에 대한 편견을 여지없이 깨뜨린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젊은 세대, 사회와 소통하고 평직원들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린다. 소탈한 사생활과 생각을 드러낸 SNS에서 그는 '스타'다. 트위터 폴로어만 17만명에 달한다. 지갑을 안 챙겨가 냉면집에서 부하 직원에게 돈을 빌려 밥값을 냈다든지, 집에서 라면을 끓여 먹는다든지 등등 소소하고 깨알 같은 재미를 주는 글로 화제를 모았다. 세월호 참사 이후엔 SNS 활동을 당분간 접겠다 선언했지만 세상과 사회를 향한 그의 사고는 언제나 열려 있다.

그는 말을 잘할 뿐 아니라 설득력이 뛰어나고 상대 이야기를 경청한다. 언제나 피드백을 주며 소통하려 노력한다. 세간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의 가장 큰 신뢰를 받고 있는 재계 총수란 말도 들린다.

술도 빼놓을 수 없는 '능력'이다. 소주를 3분의 2가량 채운 폭탄주 수십 잔을 마셔도 끄떡없을 정도로 주량이 무한대에 가까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산이 요즘 왜 이렇게 야구를 못 하느냐'는 질문에 "하하하…바보들~ 두산다운 야구를 못한다"고 거침없이 웃어넘겼다.

집에선 따뜻한 아버지다. 장남 서원 씨는 40개가 넘는 상을 받은 '광고 천재'로 통한다. 얼마 전엔 콘돔사업에 진출해 사회 기여를 하는 비즈니스모델을 만들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서원 씨는 학창 시절엔 그다지 모범생이 아니었다고. 온몸에 문신만 40개가 넘을 정도로 자유분방하다. 하지만 자신의 적성을 찾고 새로운 분야에 도전해 성공할 수 있었다. 그 뒤엔 아버지의 인내와 믿음이 있었다. "60명 중 57등을 해도 한 번도 공부하라고 한 적이 없어요. 속은 상하지만 때리고 나무란다고 되나요. 끝까지 믿어주는 수밖에 없죠."

얼마 전 결혼시킨 둘째 아들 부부를 위해 '더불어 사는 그게 참 결혼'이라는 문구로 끝나는 노래 가사를 만드는 각별한 부정(父情)을 보여주기도 했다.

■ He is…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ㆍ두산그룹 회장은 1955년 고(故) 박두병 두산그룹 초대 회장의 5남으로 태어났다.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보스턴대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한국외환은행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두산건설에 입사해 두산중공업 회장, 두산건설 회장, 두산인프라코어 회장 등을 거쳐 현재 두산 대표이사 회장과 두산그룹 회장을 맡고 있다. 지난해 8월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에 취임해 정치ㆍ사회 각계와 재계의 소통 가교 역할을 맡으며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박 회장은 소비재 중심 포트폴리오를 갖고 있던 두산그룹을 과감한 M&A와 매각 등을 통해 오늘날의 중공업 중심 그룹으로 성공적으로 변신시키고 성장시킨 일등공신으로 꼽힌다. 대통령부터 말단 직원까지 사회 전체와 제대로 소통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재계 인사로 통한다.

[춘천 = 이호승 기자 / 사진 = 이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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