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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브 하트`와 스코틀랜드, 영연방 탈퇴는 `흑역사`

장원주 기자

오는 6월 조기 총선 실시안을 발의한 테리사 메이 총리가 19일(현지시간) 하원 표결을 앞두고 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오는 6월 조기 총선 실시안을 발의한 테리사 메이 총리가 19일(현지시간) 하원 표결을 앞두고 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꺼풀 벗긴 글로벌 이슈-4]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협상 시작을 목전에 두고 지난 18일(현지시간) 조기총선을 갑작스럽게 요청했다. 유럽을 깜짝 놀라게 한 이번 조기총선 요청의 배경에는 영국연방에서 이탈하고자 하는 스코틀랜드의 독립 주민투표 재추진 움직임도 무시할 수 없다는 지적이 많다. 1500년대부터 영연방의 '속국'으로 전락한 스코틀랜드가 500여 년의 시차를 뛰어넘어 독립하려는 데는 정치·사회·경제적으로 런던 정부와 더 이상 함께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는 분석이 많다.

스코틀랜드 사람들에게는 역사적으로 16세기 강대국이었던 자국이 속국으로 전락한 과정에 영국의 '농단'이 원인이었다는 불신이 깊이 깔려 있다. 더욱이 민족적 '태생'이 다르다. 잉글랜드는 앵글로색슨족이지만, 스코틀랜드는 켈트족이다. 원래 켈트족이 지금의 영국 영토에 먼저 정주했지만, 앵글로색슨족이 들어오자 켄트족은 터전을 빼앗겼다.

이때부터 양국 간 '흑역사'는 잉태했다. 멜 깁슨이 주연한 영화 '브레이브 하트'의 배경이 14세기 초 스코틀랜드의 1차 독립전쟁이라는 점은 뿌리 깊은 갈등의 역사를 방증한다. 엔딩 작면에서 멜 깁슨이 죽어가면서 "자유(freedom)"라고 절규하는 장면은 스코틀랜드 민족의 아픔을 상징한다.

로마 사람들은 스코틀랜드를 '칼레도니아'로 불렀다. 이는 스코틀랜드에 살았던 부족 이름에서 나왔지만, 로마인들에겐 '정복되지 않는 땅'으로 인식됐다. 로마제국 시대, 잉글랜드는 로마에 복속됐지만 스코틀랜드는 끝내 굴복하지 않았다. 거친 파도에 의해 깎여진 산맥과 접근조차 하기 힘든 깊은 계곡들로 이루어진 스코틀랜드 민족성을 상징한다.

1500년대만 하더라도 스코틀랜드는 국제적으로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주도권이 있었다. 당시 프랑스의 왕세자였던 '프란시스'는 스코틀랜드의 여왕인 '메리'와 결혼한 상태였다. 유럽에서 가장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었던 프랑스와 연을 맺은 스코틀랜드의 영향력은 그만큼 높아졌다.

하지만 종교개혁 시기였던 만큼 스코틀랜드는 종교에 발목이 잡혔다. 스코틀랜드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잉글랜드는 엘리자베스 1세의 통치 아래 천주교에서 개신교로 전환했고, 신교를 국교로 선택하면서 성공회로 대전환했다.

여기에서 스코틀랜드 역사가 분수령을 맞게 된다. 전통적인 천주교 국가인 프랑스와 종교개혁에 동참하는 잉글랜드 사이에서 고민하던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의 손을 들었다. 종교개혁에 무게중심을 둔 스코틀랜드는 1603년 왕국연합, 1707년 스코틀랜드-잉글랜드의 의회 연합에까지 이르게 됐다. 이후 300년이 넘는 기간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와 함께 공동 운명체를 유지해왔다.

스코틀랜드인들은 잉글랜드에 대해 '피해의식'이 많다. 종교적인 이유로 '사돈지간'인 프랑스와 결별했지만 잉글랜드로부터 도움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산업혁명 이전에는 농산물 공급기지였고, 이후에는 영국 전역의 공장 90%가량이 스코틀랜드에 밀집할 정도로 '일방적인 희생'을 당했다는 인식이 깊다.

이러한 점에서 스코틀랜드가 영연방으로 탈퇴하려는 가장 커다란 이유는 경제적인 이유다. 외교 부문을 제외하고 폭넓게 자치정부로서의 권한을 행사하는 만큼 경제적 명분이 가장 크다는 것이다. 그 중심에는 북해유전과 가스전이 있다. 스코틀랜드인들은 스코틀랜드 땅에서 나오는 천연자원이 왜 잉글랜드인들의 배를 불리는 데 사용되는지 불만이 많다.

영국과 유럽대륙, 스칸디아반도로 둘러싸인 북해에서 1967년 매장량만 30억t에 달하는 대규모 유전이 발견됐다. 북해유전의 원유 생산지가 대부분 북쪽에 몰려 있어 약 90%가 스코틀랜드에 귀속돼 있다. 북해유전에서 생산된 에너지를 팔아 번 돈이 영국 정부 재정에 상당 부분 들어가지만 분리독립 후엔 이를 모두 스코틀랜드가 가질 수 있다는 점이 스코틀랜드 민심을 흔들리게 한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스코틀랜드의 조선과 항만시설은 독일의 주요 공격 목표가 되면서 큰 타격을 받으며 전후 스코틀랜드 지역 산업이 무너졌다. 산업 기반을 잃은 스코틀랜드 경제는 잉글랜드에 비교해 낙후됐다. 1980년대 마거릿 대처 총리가 강력한 민영화 정책을 추진하면서 스코틀랜드 경제의 기반이던 철강과 조선산업은 무너져 내렸다. 반면 런던의 금융산업은 성장 발전하고 있었다. 스코틀랜드 주민들이 런던 정부에 박탈감을 느끼는 이유다.

특히 '술' 문제가 스코틀랜드 독립의 숨은 속내다. 스코틀랜드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카치 위스키의 생산지다. 위스키 수출이 스코틀랜드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0%를 넘는다. EU를 탈퇴한다면 당장 관세 문제가 제기된다. 그동안 EU 회원국으로 누리던 자유무역협정(FTA) 조약은 전부 무효가 된다. 영국에 진출한 다국적기업은 다른 EU 회원국으로 이전할 것이고, 스코틀랜드의 지역경제는 파탄될 전망이다.

[장원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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