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관 2인 사임에 해체론까지
성희롱과 사학스캔들 모두 관련 조사가 진행 중이어서 후임 인사도 불가능한 상황이다. 여기에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상마저 사학스캔들과 후쿠다 전 차관 성희롱 스캔들 대응 과정에서 부적절한 언행으로 야당과 언론에 사퇴 압박을 받고 있다. 의원내각제인 일본에서는 정치인이 장관을 맡는다. 한국식 행정고시를 합격해 공무원이 된 관료가 정부 부처에서 오를 수 있는 최고위직이 사무차관이다.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진 재무성 내부의 위기감은 최고조다.
이번 사태에 대해 재무성 전신인 대장성의 해체를 불러온 1998년 '요정 접대 사건' 때보다 위기감이 더 심각하다는 평이 나올 정도다. 재무성 간부는 "요정 접대 사건 때도 (장차관이 일을 못하는) 지금 같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간부는 "부처 분위기가 최악"이라며 "이번엔 변명할 여지도 없다"고 일본 언론에 분위기를 전했다.
후쿠다 전 차관은 저녁식사 자리에 불러낸 여 기자를 상대로 '가슴을 만져도 되느냐' '불륜을 저지르자' 등 발언을 했다. 주간지 보도로 세간에 알려진 뒤에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며 버티다가 여론에 역풍을 맞았다. 사가와 전 국세청장은 국유지를 총리와 인연을 내세운 모리토모학원에 헐값에 매각한 뒤 관련 서류를 요구하는 국회에 조작된 문서를 제출했다. 여론도 "관료로서 품위도 없고 고위 공무원으로서 책임감과 자존심을 내팽개쳤다"며 싸늘하다.
재무성의 전신은 '오쿠라쇼'라는 일본어로 더 잘 알려진 대장성이다.
재정정책, 예산, 세금을 비롯해 금융산업 등 돈과 관련된 것은 모두 대장성이 관리했다. 부처 힘이 막강하니 인재가 몰렸고 최고 수재로 여겨지는 도쿄대 법대 출신이 절대 다수를 차지할 정도였다. 일본 경제 성장을 견인하며 '부처 중 부처'라는 평가와 함께 관료들 자부심도 높았다. 내부에선 "우리가 후지산이며 나머지 부처는 산줄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역설적이지만 너무 큰 힘이 몰락을 불러왔다. 1998년 대장성 금융검사부 간부가 금융회사에서 요정 접대를 받은 이른바 '요정 접대 사건'이 드러나 당시 재무상과 차관이 물러났다. 대장성의 금융감독 기능은 신설한 금융청으로 이관됐고 2001년엔 재무성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권한이 축소됐다고는 하지만 예산 등을 쥐고 있는 데다 산하에 국세청도 있어 여전히 위세가 등등했다.
한동안 잠잠하던 재무성이 다시 위기에 몰리게 된 것은 최고 실세 부처란 오만과 아베 1강 체제의 부작용이 합쳐진 결과란 것이 일본 언론 평가다.
후쿠다 전 차관은 도쿄대 법대 출신으로 한국식으로 치자면 행시와 사시를 모두 합격한 인물이다. 관료로서 그의 인생은 거칠 것이 없었다. 여기에 부처 내 유일한 상관인 재무상은 자민당 2대 파벌의 대표인 아소 부총리다. 정권 유지를 위해 아소 부총리의 지지가 필요한 아베 신조 총리가 재무성에 대해서는 불만을 말하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실세 중 실세인 아소 부총리에게 신임을 받아온 후쿠다 전 차관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 사실상 없는 셈이다. 관련 보도가 잇따랐지만 후쿠다 전 차관이 납득하기 어려운 해명으로 일관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또 아베 총리의 장기 집권과 내각 인사국 신설(2014년 5월)로 관료사회에서 총리관저 영향력이 높아진 것도 한몫했다. 고위 공무원일수록 인사권을 쥔 총리실만을 바라보는 구조가 고착된 셈이다. 재무성 관계자는 "아베 총리에게 반기를 들었다간 승진은 사실상 접어야 한다는 것이 전반적인 분위기"라고 전했다.
한편 재무성이 제 기능을 못하면서 내년으로 예정된 소비세 인상 등 관련 정책 추진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일본 정부 재정 건전화 등을 위해 내년 10월 현행 8%의 소비세를 10%로 올린다는 계획이다. 추진 여부 등이 올해 최종 확정돼야 하지만 재무성 기능이 사실상 정지돼 혼선이 불가피해졌다.
[도쿄 = 정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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