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소재 공급망 위기
직격탄 맞은 석유제품 기업들
유가 10% 오르면 비용 6.3%↑
원가부담에 납기 리스크 겹쳐
中企까지 연쇄 수익성 악화
나프타 품귀, 이번주가 고비
반도체용 헬륨가스도 '우려'
한국프라스틱공업협동조합연합회가 지난 9~11일 600개 유관 기업을 상대로 긴급 실시한 '중동 지역 정세 관련 원료 수급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 기업 37곳 중 71.1%는 공급사인 유화사에서 공급이 축소되거나 중단될 수 있다는 안내를 받았다. 31.6%는 공급이 불확실하다는 응답을, 10.5%는 공급이 지연될 수 있다는 안내를 각각 받았다.
보일러 기업 A사는 폴리프로필렌(PP) 공급망 불안에 비상 경영 체제를 가동하고 있다. 주요 공급사가 이란 사태 여파로 공급 '불가항력' 가능성을 고지했기 때문이다. PP는 범용 플라스틱으로 가볍고 내열성·내화학성이 우수해 포장재, 자동차 부품, 가전, 생활용품 등에 널리 쓰인다. A사 관계자는 "전쟁이 장기화하면 4월부터는 가격 상승뿐 아니라 공급을 받는 데도 문제가 될 수 있다"며 "물량을 확보하고자 수입처 다변화를 서두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구 업계도 필기구에 많이 쓰이는 합성수지인 레진 가격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레진은 원유나 천연가스에서 추출한 나프타를 분해해 얻은 에틸렌·프로필렌 등 기초 유분을 중합해 만드는 합성수지다. 문구기업 B사 관계자는 "유가 변동에 따른 합성수지 가격 추이를 지속적으로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동 전쟁발 에너지 수급 불안과 생활물가 급등 우려는 이미 현실화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합성수지를 공급받아 산업용 소재 및 소비재를 제조하는 기업들은 전쟁 이후 원료 공급가 인상 고지서를 받는 것은 물론, 그마저도 제때 공급받지 못할 가능성에 불안을 호소하고 있다. 복수 응답으로 기업의 94.7%는 '생산원가 상승으로 인한 수익성 악화'가 가장 큰 영향이라고 답했다. 또 68.4%는 '제품 생산일정 차질에 따른 납기 지연'을 꼽았다. 이어 39.5%는 '생산량 감소 또는 생산 중단'을, 18.4%는 '해상운임 상승 등 추가 비용'을 지목했다.
연합회 관계자는 "국내 석유화학사들이 일시에 가격 인상과 생산 감축을 통보해 중소기업들에 부담이 전가되고 있다"며 "급격한 원료 가격 인상을 완화할 수 있는 대책과 공급을 조절하는 역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제 시장에서 합성수지 가격은 원료가 되는 나프타보다 가격 인상 폭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한승재 DB증권 연구원은 "전쟁 후 6거래일 동안 나프타는 t당 355달러 올랐는데, 같은 기간 부타디엔·벤젠 등 기초 유분과 LDPE·선형저밀도폴리에틸렌(LLDPE)과 같은 합성수지 중간 제품 가격은 나프타 상승 폭을 웃돌 정도로 더 가파르게 급등했다"고 설명했다.
더 큰 문제는 화학원료 가격 상승이 제조업 생산비용에 전방위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국제유가가 10% 상승하면 제조업 전체적으로 생산비는 0.71%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석유제품의 생산비용 증가율은 6.3%에 달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화학제품(1.59%), 고무 및 플라스틱 제품(0.46%) 등도 생산비가 늘어났다. 업계에서는 기업별로 원료 비축량이 다르지만 일부 화학사는 이르면 이번주에 원료인 나프타가 바닥을 드러낼 수 있다고 염려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가동률을 줄이거나 공장 가동을 멈추는 대응이 예상된다. 화학사들은 수출 금지 요청 등을 검토하고 있지만, 국내에서 생산되는 나프타는 경질 나프타로 수출하는 중질 나프타와 달라 수출 금지 실효성에 대한 의문점도 있다. 한 화학업계 관계자는 "현재 나프타 부족은 동아시아권 국가가 공통으로 겪고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협회 차원에서 산업통상부와 상황을 면밀히 살피고 있다"며 "중질 나프타를 설비에 사용하면 설비 손상이 발생할 수 있어 나프타 수출 금지는 신중히 검토하고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비재뿐만 아니라 산업용 화학 소재 확보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중동 의존도가 높은 반도체용 헬륨가스 역시 공급망 불안정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한 반도체용 특수가스 업계 관계자는 "가격 인상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으며, 공급 대체원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반도체 기업에 헬륨 등 특수가스를 공급하는 린데코리아 등은 카타르에서 상당 부분을 수입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정부도 산업 기초소재의 공급 상황을 파악하고 우선순위에 따라 배분하는 작업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화학산업계 관계자는 "현재 공급이 부족한 나프타는 반도체, 가전, 자동차 등 산업용에 먼저 공급하는 방안을 산업부 등에서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강인선 기자 / 서정원 기자 / 양세호 기자 / 이동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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